안녕하세요 수석님

저는 지금 H/W Platform 2 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홍현주라고 합니다.

삼성에 입사한지 4년째가 되었으며,

그동안 많은 양산 모델을 개발하면서 3개 정도의 모델 규격승인 진행을 총괄/담당하였습니다.

한번도 뵙지못한 수석님께 실례를 무릅쓰고 메일을 보내게 된 것은,

제목과 마찬가지로 규격승인그룹에서 일하고 싶은 기회를 가져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아래 간략하게나마 제 소개를 잠시 드리고자 합니다.

– 이름 : 홍현주

– 부서 : 플랫폼 개발팀 H/W Platform 2 그룹

– 경력 : H/W 회로 검토,개발 // 유럽,중국 규격승인

           ( 현재 4년차  )

– 역량 : 외국어(영어)필기1등급 / 회화 2등급 보유

3개정도 모델의 유럽/중국 승인 진행을 총괄하면서 접하게 된 규격승인 업무는 늘 새로웠고 아주 전문적인 일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오래동안 회사생활을 하며 나만의 Carrer 을 쌓기 위해서는,

현재 하고 있는 개발업무보다는 전문적인 일을 찾아야 하겠다는 필요를 느끼게 되었구요.

늘 새로운 부분이나 변화하고 있는 규격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도,

한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될수 있다는 것도 이일의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식적으로 해당 업무에 대한 인력을 모집하지 않는 것을 잘 알기에, 기회를 엿보다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수석님께 문의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게 한번 기회를 주실순 없으신지요…

기회가 된다면 정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10 Comments

  1. 군 시절 부대원의 훈련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었습니다. 프로그램 코딩 뿐만이 아니라, 전체 프로그램의 GUI를 위한 디자이너가 특별히 있었던 상황도 아니었기에 손수 전체 프레임을 디자인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플래시, 포토샵 등의 이미지 관련 툴 사용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하여, 여기서 배운 이 경험으로 \’전역 후 내 손으로 나만의 독특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전역 후, 실제 디자인을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어 초안을 그려내는 것도 어려웠고, 주제 또한 명확하지 않았기에 나 자신을 웹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답답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겨울이 되었고, 입대 전 친구와 약속하였던 \’스키장에서 3개월 보내기\’라는 마치 합숙 같은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이 순간이 아니면, 나의 흥미에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실행하였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스노우보드에 입문하였고, 기본기를 탄탄히 하고자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슬로프로 향하면서 가슴 설렜고, 많은 추억도 만들었습니다. 이 후, 복학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3개월 동안의 추억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이 때, 스노우보더로서 저 자신을 웹공간에서 표현해 보면 괜찮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3개월 동안 있었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지인들과도 함께 공유하며, 앞으로도 만들어 갈 나만의 추억 데이터베이스로 구성하고자 하였습니다.‘스노우보더 김민규’라는 주제가 잡히자 디자인, 카테고리 구성 등 작업이 진척되기 시작했습니다. 메인 페이지에서 스노우보더라는 룩을 강조하기 위해 이미지를 위해 복장을 착용하고, 홀로 삼각대를 놓고 촬영하기를 수십차례 하였고, 각 메뉴별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및 이미지 편집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평소 친분이 있었던 웹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조언을 받으며 디자인에 대한 감각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결국, 2003년 제 생일과 동일한 날짜에 홈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었고, 현재까지 많은 지인들이 방문, 교류하면서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2. ’03년도 스키장에서의 좋았던 기억을 다시 한번 실행해 옮기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즐기기 위해, ’04년 겨울에 친구와 시즌 숙소를 운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숙소의 임대 시세를 알아보기 위하여, 평창으로 향하였고, 봉평에 위치한 어느 한 펜션의 한 층을 임대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선정 기준은 남녀가 따로 방을 쓸 수 있도록, 최소 3개 이상의 방이 있어야 하며, 화장실 또한 2개가 있는 곳으로 하였습니다. 총임대료 600만원 중 계약금으로 100만원을 선지불하고, 500만원은 스키장 오픈 1주일 전까지 납입하기로 하여, 바로 회원 모집에 나섰습니다. 저희 숙소가 지향하였던 컨셉은 20대 초중반 위주의 회원으로 구성하며,

  3. 비록 많은 마켓쉐어를 갖고 있지 않은 업체였으나, 자사 제품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일본 업체 특유의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거 보통의 국내 업체와 협의 시, 마켓쉐어가 크지 않은 업체의 경우,
    수 차례에 걸친 미팅으로 사양을 확정 짓고,

  4. 2007년 디지털 카메라 응용을 타겟으로 기획하였던 이미지센서의 시장 진입을 위하여 일본 카메라 업체를 방문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마켓쉐어를 갖고 있지 않은 업체였으나, 자사 제품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일본 업체 특유의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문 이후에도 매주 컨퍼런스콜 및 수차례의 방문으로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협력 초기 과정에서 독특하였던 점은 협력을 위한 NDA등의 각종 계약을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기술적 정보, 향후 계획등의 공개에 애하여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었습니다. 한번은 국내에서 사양 협의 미팅을 마치고, 회식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고, 평소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되었던 일본 업체의 엔지니어에게 평소 궁금하였던 내용을 질문하였으나, 공개할 수 없는 것을 묻는 것에 정색을 하여 몇 번이고 사과했던 적이 있습니다. 공과 사의 구분을 너무나 확실히 하고자 하고, 의심이 많은 그들의 문화에 저 역시 당황스러웠고, 이후에는 특정 범위를 넘어서는 질문 등은 자제 하였습니다. 협력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또 다른 독특한 점은 \’눈으로 보는 것만이 믿을 수 있다\’는 그들의 자세였습니다. 국내 업체와 협력 시에는 사양 협의 과정에서 도출된 수치적 사양을 목표로 정하고, 첫번째 샘플의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나, 그 일본 업체는 하나 하나의 결정된 사양에 대하여 실제로 구현 및 테스트 결과를 확인해가며, 진행하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개발비등은 일본 업체로 청구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한된 리소스에서 실행하여야 했기에, 다른 제품의 일정등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으나, 협력관계의 신뢰성 그리고 협력으로 득할 수 있는 기술적 내용등을 검토하여, 일본 업체의 요청대로 실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2008년 제품 양산을 시작할 수 있었고, DSLR 카메라에 처음으로 제품이 탑재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기타 고객들과의 협력에서 먼저 각 고객 기업의 문화를 먼저 파악하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5. 의사 소통으로서의 통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해지는 행위입니다. 통신은 과거 유선 방식에서 목소리만을 주고 받던 시절에서 현재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통한 통신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중심에 고속 통신망 장비, 그리고 각종 비디오, 이미지를 촬영하고 보여줄 수 있는 디스플레이, 이미징 기술의 발전이 함께 하였습니다. 지난 3년간 이미징 제품들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인지 하드웨어적 측면에서 바라보면서, 물리적 한계는 끊임없는 연구로 점차 무너져왔고, 향후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바일 환경에서 멀티미디어를 다루는 인프라는 기존 PC 환경에 비하여,미흡함으로, 실제 사용자에게 지루함을 주는 요소라는 것이 일반적 인식입니다. PC 시장은 Net book을 중심으로 슬림하고 작은 사이즈로 변화해가는 반면에, Mobile은 손에 잡히는 작은 사이즈에서 디스플레이를 확대하며, 터치스크린 적용등을 통하여, 입출력 인터페이스를 다변화해가고 있습니다. 동일 시점에서 본다면 모바일의 성능 열세가 당연시 됩니다. 따라서, 모바일 환경에서 최적화된, 즉 사용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 및 실제 구현이 모바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며, SK telecom이 이를 실현할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 스스로가 이미지의 촬영에서 부터, 편집, 웹에서의 활용까지 어릴 적부터 취미를 갖고 있어 yobrother.com이라는 제 손으로 디자인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저로서 사용 환경에서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하여 고민해왔습니다. 그리고, 과거 업무에서 각종 set maker들과 협력하면서, 실제 사용자들이 요청하는 기능들이 어떠한 것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부품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성능, 비용등의 측면의 전체 시스템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미징 응용에서의 경험과 새로운 재미를 찾는 신규 서비스 기획을 SK telecom에서 해보고 싶습니다.

  6. 건설업에 종사하시어 중동 출장이 잦으셨고, 현재도 리비아에서 근무 중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가 부재중에도 두 아들을 키워내신 강인한 어머니가 저의 부모님이십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공백을 매꾸어 주었고, 현재는 건축사무소에서 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형과 함께 성장하였습니다. 저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고, 어떤 세상에서 살고 계실지 궁금하였고, 자연스럽게 저 또한 해외의 문화와 삶에 대한 동경을 키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취미로 접하던 카메라 광학기술의 선진국, 다양하고 독특한 디자인 문화등에 큰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3학년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학기 중 파트타임으로 모았던 급여를 털어, 일본 여행을 출발하였습니다. 솔직히 이 여행을 통해 선진국에 대한 큰 감흥, 동경을 얻기보다는, 이 세상에 또 다른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 큰 소득이었습니다. 이 후, 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보고자 대학 4학년 여름방학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지난 일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여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 일본처럼 문명의 이기를 생활에 굳이 적용하지 않아도, 천천히, 여유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보고, 들었던 것들을 미래의 제 가족들에게도 체험해 줄 수 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후에 졸업 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에 입사하였는데, 부서 배치 면담 과정 중 삼성에서 카메라에 채용되는 이미지 센서를 개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고민 끝에 취미 생활로 하던 카메라 지식도 살릴 수 있어 면담을 거쳐 이미지센서 반도체의 상품기획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리고, 삼성에서의 경험을 통해 저의 강약점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의 강점은 어느 한가지에 집중하면 의문이 풀릴 때까지, 계속해서 \’왜일까?\’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집중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취득한 정보를 동료들과 서로 공유하고, 모두가 레벨업하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도 강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 약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성취한 성과들을 널리 홍보하는 것, 즉 저 자신을 홍보하는 것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제 성과등에 타인이 의문을 품는 것에 때때로 불괘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모두가 저와 똑같은 시선을 같고 있지는 않다는 점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7. 1999년, 유니텔이라는 PC통신의 댄스동호회 \’춤사위\’라는 모임에서 군입대 전까지 3년 가까이 활동하였습니다. 당시에 힙합, 댄스라는 것이 젊은 층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으려 하고 있었으나, 지금과 같이 인터넷 커뮤니티, 정보채널들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보 교류는 \’모임\’과 \’모임\’이 만나서 서로의 실력을 겨루어 보고, 서로 지도해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제가 가입했을 당시 서울지역 실제 off-line에서 활동을 하는 회원이 100여명 정도 되었는데, 저는 춤에 관하여 전혀 문외한이었습니다. 우선은 개인적으로 빠르게 춤실력을 키우고 싶었고, 전체적으로는 모든 회원과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였던 것이 동호회의 정기공연에서 촬영 및 커뮤니티에 사진을 업로드하는 일에 자원하였습니다. 당시 대중화되어있지 않았던 DSC가 큰 도움이 되었고, 결과물을 편집,업로드하려 밤을 새기도 하였습니다. 오랜 시간의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운영진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춤실력도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모임에는 한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존 회원들과 신입 회원들간의 벽이었습니다. 실질적으로, 기존 회원들 특히 운영진들의 텃세가 문제였는데 저를 포함한 대부분 회원들이 20대초반의 어린 연령대이었기 때문에 이를 깰 의지가 부족했었습니다. 그 텃세를 버텨내고, 실력이 같이 상승되어 주면 마치 \’귀족의 권한\’을 갖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 것을 깨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신입 회원들이 연습실에 방문하면, 제가 먼저 다가가 처음에 배웠던 기본 동작들을 지도해주고, 연습이 끝나면 특유의 사교성으로 맥주한잔 정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수차례의 이런 모임을 통해서, 완전히 벽을 허물지는 못했으나, 꽤 부드러워진 연습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동호회를 위하여 가장 크게 노력하였던 부분은 \’멀티미디어 자료의 확보\’였습니다. 스스로 이미지, 비디오를 다루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였고, 공연에도 참가하게 되면서 공연에 사용할 음악 편집을 위해, 편집툴을 배워 가면서 음악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온라인 회원들과도 공유하면서, 실제 참여하지 않아도 함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에 노력하였습니다.

  8. 군 시절 부대원의 훈련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었습니다. 프로그램 코딩 뿐만이 아니라, 전체 프로그램의 GUI를 위한 디자이너가 특별히 있었던 상황도 아니었기에 손수 전체 프레임을 디자인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플래시, 포토샵 등의 이미지 관련 툴 사용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하여, 여기서 배운 이 경험으로 \’전역 후 내 손으로 나만의 독특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전역 후, 실제 디자인을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어 초안을 그려내는 것도 어려웠고, 주제 또한 명확하지 않았기에 나 자신을 웹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답답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겨울이 되었고, 입대 전 친구와 약속하였던 \’스키장에서 3개월 보내기\’라는 마치 합숙 같은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이 순간이 아니면, 나의 흥미에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실행하였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스노우보드에 입문하였고, 기본기를 탄탄히 하고자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슬로프로 향하면서 가슴 설렜고, 많은 추억도 만들었습니다. 이 후, 복학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3개월 동안의 추억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이 때, 스노우보더로서 저 자신을 웹공간에서 표현해 보면 괜찮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3개월 동안 있었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지인들과도 함께 공유하며, 앞으로도 만들어 갈 나만의 추억 데이터베이스로 구성하고자 하였습니다.‘스노우보더 김민규’라는 주제가 잡히자 디자인, 카테고리 구성 등 작업이 진척되기 시작했습니다. 메인 페이지에서 스노우보더라는 룩을 강조하기 위해 이미지를 위해 복장을 착용하고, 홀로 삼각대를 놓고 촬영하기를 수십차례 하였고, 각 메뉴별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및 이미지 편집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평소 친분이 있었던 웹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조언을 받으며 디자인에 대한 감각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결국, 2003년 제 생일과 동일한 날짜에 홈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었고, 현재까지 많은 지인들이 방문, 교류하면서 계속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9. 2007년 디지털 카메라 응용을 타겟으로 기획하였던 이미지센서의 시장 진입을 위하여 일본 카메라 업체를 방문하였습니다. 비록 많은 마켓쉐어를 갖고 있지 않은 업체였으나, 자사 제품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일본 업체 특유의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문 이후에도 매주 컨퍼런스콜 및 수차례의 방문으로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협력 초기 과정에서 독특하였던 점은 협력을 위한 NDA등의 각종 계약을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기술적 정보, 향후 계획등의 공개에 애하여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었습니다. 한번은 국내에서 사양 협의 미팅을 마치고, 회식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고, 평소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되었던 일본 업체의 엔지니어에게 평소 궁금하였던 내용을 질문하였으나, 공개할 수 없는 것을 묻는 것에 정색을 하여 몇 번이고 사과했던 적이 있습니다. 공과 사의 구분을 너무나 확실히 하고자 하고, 의심이 많은 그들의 문화에 저 역시 당황스러웠고, 이후에는 특정 범위를 넘어서는 질문 등은 자제 하였습니다. 협력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또 다른 독특한 점은 \’눈으로 보는 것만이 믿을 수 있다\’는 그들의 자세였습니다. 국내 업체와 협력 시에는 사양 협의 과정에서 도출된 수치적 사양을 목표로 정하고, 첫번째 샘플의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나, 그 일본 업체는 하나 하나의 결정된 사양에 대하여 실제로 구현 및 테스트 결과를 확인해가며, 진행하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개발비등은 일본 업체로 청구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한된 리소스에서 실행하여야 했기에, 다른 제품의 일정등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으나, 협력관계의 신뢰성 그리고 협력으로 득할 수 있는 기술적 내용등을 검토하여, 일본 업체의 요청대로 실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2008년 제품 양산을 시작할 수 있었고, DSLR 카메라에 처음으로 제품이 탑재되는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으로 기타 고객들과의 협력에서 먼저 각 고객 기업의 문화를 먼저 파악하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10. 2003년도 스키장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을 다시 한번 실행해 옮기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즐기기 위해, 2004년 겨울 친구와 시즌 숙소를 운영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숙소의 임대 시세를 알아보기 위하여, 평창으로 향하였고, 매주말 방문하여 숙소를 물색, 봉평에 위치한 어느 한 펜션의 한 층을 임대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선정 기준은 남녀가 따로 방을 쓸 수 있도록, 최소 3개 이상의 방이 있어야 하며, 화장실 또한 2개가 있는 곳으로 하였습니다. 총임대료 600만원 중 계약금으로 100만원을 선지불하고, 500만원은 스키장 오픈 1주일 전까지 납입하기로 하고, 바로 회원 모집에 나섰습니다. 저희 숙소가 지향하였던 컨셉은 27세 이하의 성인 회원으로 구성하여, 너무 큰 나이차에서 오는 회원들간의 군대와 같은 서열문화를 배제하고자 하였습니다. 회원 총원은 20명으로 하여, 회비는 1인당 30만원으로 책정하였습니다. 홍보를 위해, 각종 스노우보드 관련 커뮤니티 및 블러그에 홍보글을 올리고, 스키장 오픈 한달전 회원 모집을 완료하였습니다. 다행히도 대부분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 겨울동안 함께 생활할 회원들의 얼굴도 보고, 소소한 규칙등에 관하여도 이야기해보고자 대학로에서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후로도 초보회원들의 스노우보드 장비 구매등을 돕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2004년 겨울 스키장이 오픈하였고, 시즌 숙소에 회원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회원 중에는 스노우보드에 대한 열정으로 해외 리조트로 원정을 다녀오는 등 실력이 출중한 회원들도 몇 있었습니다. 그런 만남을 통해 저 역시 실력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활동이 저로서는 20여명이라는 회원을 이끌어 보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반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외부 시선도 느껴야 했습니다. 먼저 부모님께서 경제, 시간적으로 소비적인 활동으로 인식하시어, 설득하려 노력했습니다. 앞으로 나에게 이렇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볼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고, 만약 온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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